이종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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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종석은 1958년 경기도 양주군 출생으로,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대 학생운동 지도자로 활동했으며, 대학원 재학 중 북한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고, 현재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그는 북한, 남북관계, 북중관계 연구를 통해 대북 포용 정책을 주장했으며, 미국과 일본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의 정치 사상과 발언은 논란을 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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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석 (정치인) - [인물]에 관한 문서 | |
|---|---|
| 인물 정보 | |
| 이름 | 이종석 |
| 로마자 표기 | Lee Jong-seok |
| 한글 | 이종석 |
| 한자 | 李鍾奭 |
| 출생일 | 1958년 5월 11일 |
| 출생지 | 경기도 남양주시 |
| 국적 | 대한민국 |
| 직업 | 정치인, 학자 |
| 경력 | 통일부 장관 |
2. 약력
- 1958년 경기도 양주군 출생[2]
- 용산고등학교 졸업[2]
-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입학, 학생운동 참여[2]
- 1994년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 연구위원 (~2003년)
- 1995년 통일원 정책자문위원 (~2003년)[1]
- 2000년 남북정상회담 대통령 특별수행원[1]
- 2003년 3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1]
- 2006년 2월 제32대 통일부 장관 임명[1]
- 2006년 12월 통일부 장관직 사임[1]
- 2008년 ~ 2009년 스탠퍼드 대학교 방문교수
- 현재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겸 발전위원회 위원장
2. 1. 학문적 배경
이종석은 1977년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하여 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 1984년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 들어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정형화된 북한론을 개혁하여, 북한에 대한 내재적비판적 접근을 강조하며 북한, 남북관계, 북중관계를 연구하였다. 석사학위 논문은 〈북한지도집단의 항일무장투쟁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연구〉이며 박사학위 논문은 《조선노동당의 지도사상과 구조변화에 관한 연구》이다. 1989년부터 1996년까지 경희대, 서강대, 서울대, 성균관대의 강사를 역임하였다.대학교 졸업 후,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로 진학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2] "독립문연구회"의 일원으로서 주체사상과 김일성 및 북한의 혁명사 등을 배우고, '북한 지도집단의 항일 무장 투쟁의 역사적 경험에 관한 연구'와 '조선로동당의 지도 사상과 구조 변화에 관한 연구' 등을 저술했다.[2]
2. 2. 연구 활동 및 저술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 같은 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 들어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정형화된 북한론을 개혁하여, 북한에 대한 내재적비판적 접근을 강조하며 북한, 남북관계, 북중관계를 연구하였다. 석사학위 논문은 〈북한지도집단의 항일무장투쟁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연구〉이며 박사학위 논문은 《조선노동당의 지도사상과 구조변화에 관한 연구》이다. 1989년부터 1996년까지 경희대, 서강대, 서울대, 성균관대의 강사를 역임하였다.1994년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 연구위원(~2003년)을 맡아 한층 전문적으로 북한의 정치와 남북관계를 연구하여, 이때부터 대북 포용정책을 언론에서 본격적으로 주장하게 된다. 1995년 《조선노동당연구: 지도사상과 구조변화를 중심으로》와 《현대 북한의 이해》를 저술하였으며, 1998년 《분단시대의 통일학》, 2000년 《새로 쓴 현대북한의 이해》, 《북한-중국 관계: 1945-2000》를 저술하였다.
2. 3. 정부 활동
1994년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 연구위원(~2003년)을 맡아 북한 정치와 남북관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며 대북 포용정책을 언론에서 본격적으로 주장했다.[1] 1995년부터 2003년까지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을 맡았다.[1]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강력히 지지했으며,[1]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대통령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김대중 대통령과 동행하여 평양을 방문했다.[1]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3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으로 임명되었다.[1] 2006년 2월 제32대 통일부 장관에 임명되었으나,[1] 북한의 핵실험 여파로 그 해 12월 장관직을 물러났다.[1]2. 4. 정부 활동 이후
1994년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 연구위원(~2003년)을 맡아 북한 정치와 남북관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며 대북 포용정책을 언론에서 본격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1995년 《조선노동당연구: 지도사상과 구조변화를 중심으로》와 《현대 북한의 이해》를 저술하였고, 1998년에는 《분단시대의 통일학》, 2000년에는 《새로 쓴 현대북한의 이해》, 《북한-중국 관계: 1945-2000》를 저술하였다. 1995년부터 2003년까지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을 맡았다. 김대중 정권의 햇빛정책을 지지했으며,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대통령 특별수행원으로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평양을 방문했다. 노무현 정권 시기인 2003년 3월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으로 임명되었다. 2006년 2월 제32대 통일부 장관에 임명되었으나, 북한의 핵실험 여파로 같은 해 12월 장관직에서 물러나 세종연구소로 복귀하였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스탠퍼드 대학교 방문교수로 한반도와 동아시아 문제를 연구했다. 현재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겸 발전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 중이다.3. 정치 사상 및 주장
이종석은 미·한 관계와 남북 관계를 한국의 중요한 두 축으로 규정하고, 이 두 관계가 적대적인 것은 한국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는 두 축을 분리하는 대신 정권 내부로부터 접근하여 조절·관리하고, 최종적으로는 두 관계를 동등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북한에 대한 유화 정책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주장은 남북 간 활발한 교류를 통해 상호 정부 내부 구조를 파악하고 친화성을 높여야 한다는 구상으로 이어졌다. 또한 북한에 체제 변화를 요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 내부의 구조 변화도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낡은 보수·진보 이념 대립에서 벗어나 반공적인 법령 개폐와 과거사 청산을 강조했다.
3. 1. 대북관 및 통일관
이종석은 미·한 관계와 남북 관계를 한국의 두 축으로 규정하고, 두 관계가 적대적인 것은 한국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는 두 축을 분리하는 대신 정권 내부로부터 접근하여 축을 조절·관리하고, 최종적으로 미·한 관계와 남북 관계를 동등한 관계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북한에 대한 유화 정책으로 평가된다.[1]이를 실현하기 위해 남북 간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상호 정부 내부 구조를 파악하고, 정부 간 친화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북한에 체제 변화를 요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 내부의 구조 변화도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낡은 보수·진보의 이념 대립에서 벗어나 반공적인 법령 개폐, 북한과 대립했던 여러 변혁과 과거사 청산을 강조했다.[1]
미국 및 일본에 대해서는 외형적인 것에 얽매여 함부로 불협화음을 내는 것이 한국의 국익을 해치고 있다고 비판하며 매우 강경한 어조를 취했다.[1] 특히 일본에 대해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즉각적인 경제 제재 발동을 비판하고, 이것이 미국의 잘못된 외교 정책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하여 여야 양쪽으로부터 큰 비판을 받았다.[2]
와다 하루키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보도가 자주 나오며,[3][4] 와다의 한국 전쟁 사관의 영향을 받았다는 평가가 있다.[4] 국가정보원은 이종석이 와다의 저서를 번역하고 북한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고 밝히며, 이종석을 중심으로 한 그룹이 북한 주도의 통일 헌법 초안을 준비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3]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개막식 전날 북한의 군사 퍼레이드 예고에 대해, 이종석은 "김정은이 정상 국가로 나아가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평가하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 신보라 국회의원은 "북한 대변인도 혀를 내두를 김정은 칭찬"이라며 비판했다.[5]
3. 2. 대미·대일 관계
이종석은 미국과 일본에 대해 외형적인 것에 얽매여 불협화음을 내는 것이 한국의 국익을 해친다고 비판하며 강경한 어조를 취했다.[1]일본이 납치 피해자 문제와 관련하여 70년대에 니가타현에서 납치된 중학생의 아버지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종석은 "(아버지와) '''만날 필요는 없다.'''", "'''도대체 무엇을 하러 오는 건가?'''"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또한 "김정일 국무위원장은 납치를 고백하려는 접근 방식을 보였지만, 일본은 이러한 양보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국제 여론과 동떨어진 발언을 했다.[1]
2006년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일본이 즉시 경제 제재 발동을 발표하자 이를 강하게 비판했다. 더 나아가 이 원인이 미국의 잘못된 외교 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하여 여야 양쪽으로부터 큰 비판을 받았다.[2] 2006년 9월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 당시,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국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시 북한을 비난하는 대신 일본을 먼저 비판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와다 하루키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보도가 자주 나오며[3][4], 그의 한국 전쟁 사관에 영향을 받았다는 평가가 있다.[4] 국가정보원은 "이종석은 92년, 와다의 저서 '김일성과 만주 항일 전쟁'을 번역했다"고 밝히며, 이종석의 여러 북한 찬양 발언을 지적했다. 또한 "서동만 국가정보원 실장, 이종석을 중심으로 한 그룹이 북한 주도의 통일 헌법 초안을 준비하고 있는데, 와다가 지혜를 보태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와다 배후설'을 제기했다.[3]
2018년 2월, 북한이 평창 동계 올림픽 개막식 전날인 8일에 군사 퍼레이드를 예고한 것에 대해, "김정은이 정상 국가로 나아가는 일련의 과정"이라며 "실용주의적인 스타일이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자유한국당 신보라 국회의원은 "북한 대변인도 혀를 내두를 김정은 칭찬", "민주당 중진과 문재인 대통령의 멘토인 정세현,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까지 북한 대변인을 자처하며 나라를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이 정권에는 북한 대변인이 왜 이렇게 많은가", "동맹국 미국의 부통령 (마이크 펜스)과 이웃 국가 총리 (아베 신조)에 대해 모욕적인 언행을 하면서 북한을 감싸는 모습은 어이가 없다"고 비판했다.[5]
3. 3. 비판 및 논란
이종석은 미·한 관계와 남북 관계를 한국의 중요한 두 축으로 보았으며, 이 두 관계가 조화롭게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북한과의 활발한 교류를 강조하고, 북한에 대한 유화 정책을 지지했다. 또한, 낡은 이념 대립에서 벗어나 반공적인 법령 개정과 과거사 청산을 주장했다.[1]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특히 일본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며, 북한의 미사일 발사 책임을 미국의 외교 정책 실패로 돌리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2]
와다 하루키와의 관계로 인해 한국 전쟁에 대한 그의 역사관에 영향을 받았다는 평가를 받는다.[3][4] 국가정보원은 이종석이 와다 하루키의 저서를 번역하고 북한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고 밝혔다.[3]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개막 전날 북한의 군사 퍼레이드 예고에 대해 "김정은이 정상 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발언하여 자유한국당 신보라 의원으로부터 "북한 대변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5]
참조
[1]
뉴스
李統一部長官「脱北者ソ氏の米亡命はナンセンス」
http://japanese.chos[...]
2006-05-04
[2]
뉴스
北朝鮮ミサイル問題 韓国統一相の米批判発言を擁護 盧大統領に集中砲火
http://www.nishinipp[...]
2006-07-26
[3]
뉴스
韓国親北政権の罪第二弾 盧武鉉弾劾の真実大統領府に北のスパイが浸透していた
文藝春秋
2004-03-25
[4]
뉴스
때가 되면 등장하는 日좌익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http://www.newdaily.[...]
2014-02-06
[5]
뉴스
韓国党、安倍批判を浴びせた与党要人の発言に「国の恥さらし」
http://japanese.join[...]
2018-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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